세계가 인정하는 축구 명장 - 거스 히딩크 감독.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와 함께 이루어냈던 2002 월드컵 4강의 기쁨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또 비단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짝사랑이 아닌 것이, 히딩크 감독 역시도 세계를 누비는 자타공인 축구 명장이 된 지금도, 한국을 공공연하게 '제2의 고향'이라 부를 정도로, 한국과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당시 개최국이었기에 16강에 대한 기대감은 우리 국민 모두 어느 정도 갖고 있긴 했지만, 그 꿈을 이룬 후에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명언을 남기며 단숨에 한국 축구 대표팀을 세계 4강으로 끌어올렸던 히딩크 감독- 그런데 이렇게 늘 배가 고픈 히딩크 감독의 배를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단 하나의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는가?



 히딩크 감독은 자타공인 스파게티 마니아이면서, 또한 대단한 스파게티 미식가이다. 게다가 그 자신만 스파게티를 즐겨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고 있는 팀의 선수들에게까지 열성적으로 스파게티를 권할 정도라고.

  그래서 2002 월드컵 당시에는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선수들이 밥을 먹었다 하면 늘 김치찌개를 빼놓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맵고 짠 것을 왜 그리도 많이 먹느냐며, 스파게티를 자꾸만 권했다고 한다. 유럽에서야 스파게티가 일상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히딩크 감독의 제안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에게는 아무리 감독이라도 먹는 것까지 제재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법한 일.

 모름지기 축구에선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감독의 지휘와 지도에 따라야 하는 법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태극전사들로서는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해서 선수에게까지 그 음식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처럼 선수들의 컨디션 하나하나, 경기의 일분일초까지 세밀하게 계획하고 관리한다는 축구 컴퓨터 히딩크 감독이 태극전사들에게 이렇게까지 스파게티를 먹으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비단 스파게티의 맛만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스파게티가 품고 있는 영양분과 에너지를 좋아하여, 스파게티의 영양학적 장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판단하기에 운동선수들에게 스파게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경기 파트너가 되어주는 음식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맛있는 간식' 정도로 생각하지만, 스파게티는 운동  선수들처럼 몸을 많이 쓰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야 하는 사람에게 매우 적절한 음식이다. 스파게티는 경기 중 가장 필요한 에너지를 내는 탄수화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면서도, 운동선수들의 몸을 무겁게 하는 지방질은 매우 적은 저지방 고탄수화물 음식이다. 그러면서도 스파게티는 소화가 아주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스파게티를 만들 때 쓰는 토마토 소스는 잘 익은 붉은 토마토를 사용하는데,  토마토를 익혀 먹으면 장 활동을 원활하게 해주어 소화가 잘 된다고 한다.


 히딩크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감기나 배탈이 잦은 선수를 아주 싫어했다고 전한다.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바로 체력인데, 이 체력은 평소의 영양섭취와 건강관리에서 나오는 것인만큼 잔병치레가 많은 선수들은 체력관리가 부실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히딩크는 자반고등어나 고추장 비빔밥,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그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선수들에게도 별로 권하지 않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지나치게 맵거나 짠 음식은 위와 장을 자극하여 경기중 순간 체력사용에도 도움이 안 되고, 이런 음식들을 먹고서 급격하게 몸을 움직일 경우 소화활동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많았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이 경기전 장에 부담을 주거나 소화하기 힘든 음식은 가급적 먹지 않도록 했다.  그는 경기 전 주스만큼은 절대 마시지 못하게 했다. 주스가 위를 깎아서 소화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또 튀김처럼 기름기 많은 음식보다는 담백한 해산물을, 또 고기도 되도록 덜 구운 상태(rare)로 먹으라고 했으며, 경기를 앞두고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절대 먹지 못하게 했다. 특히 케이크를 상당히 싫어했는데 크림 때문에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히딩크가 생각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이상적인 음식은 선수에게 최대의 에너지원이 되어주면서도,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최고의 음식은 스파게티였다.

 음식에 관한 히딩크 감독의 이러한 의견은 팀 내에서도 적극 받아 들여졌다. 그래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대비 소집기간과 전지훈련 동안에는 거의 매일 점심때마다 스파게티가 꼭 나왔다고 한다. 소집기간의 고된 훈련 기간 동안 스파게티는 선수들에게 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가장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고 힘을 주는 연습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히딩크 감독은 태극전사들이 시합에 나가기 두 시간 전에는 꼭 스파게티를 먹게 하여, 선수들의 스태미너를 축적하고 경기 중 폭발적으로 소모될 칼로리를 미리 보충하였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의 스파게티에 대한 강력한 신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훈련할 때와 경기 직전 뿐 아니라, 경기 후에까지도 우리 태극전사들에게 스파게티를 권했다. 경기 후 스파게티를 먹으면 회복이 잘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럽의 축구 선수들도 경기 후엔 으레 스파게티를 먹는다고 한다.  


 축구만큼이나 스파게티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는 히딩크 감독.

 그의 말대로 스파게티는 피로를 억제하고 강한 스태미너를 유지시켜주는 고급요리이다.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 괜히 피곤해서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한 날, 스파게티 한 접시를 비우고 났더니 좀 기분이 나아지고 기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파게티의 달콤한 맛이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기분을 좋게 해준 것 같다고 간단히 생각하지만, 이것은 스파게티를 너무 얕보고 하는 판단이 아닐까 싶다.

 스파게티에는 올리브유, 토마토, 포도주, 브로콜리, 마늘 등이 들어가는데, 이 재료들은 모두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런 세계 최고의 건강식품들이 골고루 녹아들어가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 바로 스파게티인 만큼, 스파게티는 그 달콤한 맛의 순간적인 스트레스 제거 효과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재료들의 뛰어난 영양학적 효능으로 인해, 우리 몸을 실제적으로 건강하게 보조해줄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자신이 감독한 호주 대표팀을 사상 최초로 16강에 올려놓는 파란을 일으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인 명장이 된 히딩크 감독-

 그러고 보니 히딩크 감독과 그가 너무도 좋아하는 스파게티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선수들에게 아버지처럼 따뜻한 의지가 되면서도 경기와 훈련에 있어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는 히딩크 감독과, 따뜻하고 달콤하게 우리의 입맛을 달래주면서 우리 몸속에 일단 들어가면 최고의 스태미너와 영양을 공급해주는 스파게티-

 이렇게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질을 지녔기에, 히딩크 감독과 스파게티 모두 각각 세계 최고의 감독, 세계 최고의 음식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고는 최고를 알아보게 마련이라더니, 히딩크 감독이 스파게티를 좋아하고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영양식으로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고 자료-

조선일보사, 2002  거스 히딩크, 『마이 웨이』, 

쿠키뉴스 2006. 5.10, 「[히딩크 X파일] 감기·배탈 선수는 바로 '아웃'…경기 앞두고 케이크 절대금지」

쿠키뉴스 2006. 5. 12, 「[히딩크 2002 비망록] (2) 승부차기 용병술의 진수 스페인전…히딩크 사단의 의식주」

한국일보 2002. 9. 26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

한국일보 2003. 5. 26 「히딩크가 스파게티라면 코엘류는 된장국」

주간한국 2006. 5. 9 「[월드컵 D-30] 음지의 살림꾼들 “선수들이 바늘이면 우린 실이죠”」

한국경제 2002. 6. 21 「8강전 점심은 ‘불고기, 스파게티’」



 

1845년의 일입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발레리나들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발레는 완벽한 예술로 점점 꽃을 피우고 있었고, 사람들은 발레공연을 보기 위해 매표소에서 길게 줄을 서곤 했습니다.

 

발레 애호가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발레에 열광하고 발레에 마음을 사로잡혔지요.

 

그런데 이때 영국 런던의 왕립극장 지배인 벤자민 럼리(Benjamin Lumley)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새로운 발레 공연은 없을까?'

 

발레 < 캬트르> 이러한 벤자민 럼리의 고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불가능한 발레 프로젝트

 

벤자민 럼리는 언뜻 보기엔 불가능해 보이는 발레 공연을 구상합니다.

 

당시에 세계 4 발레리나라고 불렸던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i), 파니 엘슬러(Fanny Elssler), 카를로타그리시(Carlotta Grisi), 파니 체리토(Fanny Cerrito) 무대, 작품에서 공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명의 발레리나들은 당시에 스스로가 세계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라고 자부하고 있었고, 그때까지 작품에서 서로 부딪친다는 것은 상상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벤자민 럼리는 불가능한 공연을 차근차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니 엘슬러가 아팠기 때문에 떠오르는 발레계의 샛별 루실 그랑(Lucile Grahn) 합세하였고, 다른 발레리나들도 공연에 출연하게 하는 성공하였습니다.

 

 

 

 

*< 캬트르> 안무와 줄거리

 

대단한 발레 프로젝트의 안무는 페로(Jules Perrot) 맡았습니다.

 

페로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 명이 무대에 서는 공연이니만큼, 발레리나들의 개성을 살릴 있도록 안무를 하였습니다.

 

공중을 가볍게 나는 듯한 마리 탈리오니의 도약, 카를로타 그리시의 힘찬 발돋움, 파니 체리토의 완벽하고 화려한 회전, 루실 그랑의 요정처럼 귀여우면서도 겸손한 동작- 페로는 모든 것을 작품 안에 녹여내었습니다.

 

사실 캬트르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막이 열리면 분홍색 로맨틱 튀튀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명의 발레리나들의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명의 발레리나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각자의 개성과 장기가 살아나는 바리에이션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리에이션에서는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은근한 라이벌 의식까지 느낄 있기 때문에 아름다우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지요.

 

바리에이션이 끝나면 명의 발레 여왕들은 첫 장면에서와 똑같은 포즈를 취합니다.

 

그리고 상태에서 천천히 막이 내려와 공연이 끝이 납니다.

 

 

 

 

*< 캬트르> 에피소드-발레 여왕들의 은근한 자존심 싸움

 

페로의 안무대로 < 캬트르> 서서히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들인 명의 주인공이 서로 눈에 띄는 위치에 서기 위해 다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막이 열린 첫 포즈에서 누가 중간에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마지막 춤은 누가 것인가 하는 것까지- 명의 발레 여왕들은 자신이 조금 돋보이길 원했습니다.

 

사실 페로는 자신이 연인인 카를로타 그리시를 포즈의 중앙에 두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발레리나들이 그것을 두고 리가 없었지요.

 

결국 중앙에 서는 가장 좋은 자리는 가장 경력자였던 마리 탈리오니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도 다툼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번째로 좋은 위치를 놓고 남은 명의 발레리나들이 신경전을 벌였던 것입니다.

 

페로는 발레리나들 사이에서 어찌나 시달렸던지 이상 안무를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 캬트르> 이상 진행될 없을 거라고 지배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위기를 간단히 해결한 것은 지배인이자 < 캬트르> 기획한 벤자민 럼리였습니다.

 

벤자민 럼리는 모든 자리 배치를 나이 순서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명의 발레 여왕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레리나들은 자신의 나이가 다른 발레리나들보다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발레 여왕들간의 은근한 다툼은 끝이 나고, < 캬트르>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개성 있는 발레 여왕들의 무대-< 캬트르>

 

< 캬트르> 초연은 기대한 대로 성공적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대공은 매우 만족해했고 관객들도 환호했지요.

 

< 캬트르> 발레리나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맘껏 드러낼 있었던 기념비적인 공연이었습니다.

 

하지만 < 캬트르> 유명한 발레리나들의 장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보니 자체만 보면 그다지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 탈리오니, 카를로타 그리시, 파니 체리토, 루실 그랑이 없는 지금도 < 캬트르> 이따금 공연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명의 발레리나를 무대에서 만난다는 - 이것이 바로 < 캬트르> 강점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발을 가진 발레리나?

 

여러분은 혹시 우리나라에게 가장 아름다운 몸과 가장 못생긴 발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나요?

 

아니, 몸은 아름다운데 발은 가장 생겼다니, 혹시 인어공주처럼 무슨 슬픈 사연을 간직한 동화 속의 인물이냐구요?

 

아닙니다.

 

천사와 같은 몸짓으로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발레리나 강수진. 바로 강수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못생긴 발을 가졌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믿겨지나요?

 

사람들은 분홍빛 토슈즈 안에 감춰진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보면 모두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강수진의 발에는 여기저기 혹이 나고 발톱이 갈라지고 피멍이 들고 곪아. 있기 때문이지요.

 

발의 상처들은 강수진이 한국의 어린 발레 지망생에서 세계 최고의 프리마돈나(최고무용수)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발레와의 첫만남

 

지금은 세계 5 발레단 하나인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이지만 강수진 역시 발레를 하는 어린 학생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원래 어린 수진은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한국무용으로 선화예술중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에서 수진은 발레반에 들어가면서 발레와 첫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진이 발레에 열심이었던 아니랍니다.

 

처음에 수진은 발레 수업이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몸도 힘들고 지루하기만 발레수업에 수진은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발레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을 도망 다니거나 수업시간에 졸기가 일쑤였답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이지만 수진 역시 어릴 때부터 발레의 천재였던 것은 아니었던 거지요.

 

이런 수진을 발레의 길로 인도하게 것은 선화예중에 발레 선생님이 오신 다음부터였습니다.

 

수진은 친절하고 아름다운 새 선생님이 무대에서 발레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수진의 맘속엔 새 선생님께 보여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선생님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싹텄습니다.

 

그때부터 수진은 발레 연습을 하느라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동작을 만들기해서 수진은 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온종일 발레에만 빠져 있다보니 수진은 먹는 , 잠자는 것까지 잊어버릴 지경이었지요.

 

이러는 동안 수진의 발레 실력은 쑥쑥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모나코에서의 힘겨운 유학생활을 견디고...연습, 또 연습

 

그러던 어느 수진이 다니던 선화예술중학교에 조그만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진이 중학교 3학년이던 모나코라는 나라의 왕립 발레학교 교장선생님이 선화예술중학교를 방문한 것이지요.

 

모나코에서 왕립 발레학교 교장선생님이 한국에까지 것은 발레 유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리에서 수진은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실력으로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의 교장선생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수진은 드디어 발레의 본고장 모나코로 발레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나코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 모나코에서 꿋꿋하게 발레 공부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진은 포기하지 않고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연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잠들면 수진은 혼자 연습실로 돌아가 어두운 연습실에서 밤새 발레연습을 했습니다.

 

 

 

 

● 드디어 프리마돈나로 무대에 선 연습벌레

 

수진이 견뎌낸 연습의 결과는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1985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 콩쿨인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쿨에서 수진은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1위로 입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발레는 서양의 무용인만큼 동양인들은 발레를 없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완벽하게 깨뜨린 사건이었지요.

 

하지만 검은 머리의 발레리나- 강수진은 또다시 금발의 서양인들을 놀라게 합니다.

 

세계적인 발레단인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강수진은 스물 살의 나이에 당당하게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역사상 최연소 발레리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7년 동안 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아주 작은 배역만을 맡아야 했습니다.

 

유럽 최고의 발레리나들이 모여 있다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한국인인 수진의 자리는 없는 같았습니다.

 

하지만 수진은 그럴 때도 묵묵히 연습만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토슈즈가 부러지고어졌습니다. 수진의 발에는 염증이 생기고 혹이 생기고 상처가 났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수진은 토슈즈를 들고 연습실로 들어갔습니다.

 

수진은 오직 연습만이 모든 말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습 끝에 드디어 수진이 1993 로미오와 줄리엣의 프리마돈나로 무대에 섰을 , 사람들은 수진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주었습니다.

 

 

 

 

세계 속의 강수진

 

강수진은 지금도 한국인 발레리나로서 세계 발레의 역사를 끊임없이 다시 쓰고 있습니다.

 

각종 발레 단체는 강수진을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로 손꼽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강수진 거리'까지 만들어 강수진을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지요.

 

하지만 강수진이 이렇게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까지는 언제나 묵묵히 연습, 연습만을 했던 강수진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강수진이 신다가 낡아버린 토슈즈만 해도 수천 켤레가 된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버려진 수천 켤레의 토슈즈 속에서 강수진의 발은 계속해서 곪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저기 혹투성이가 되어버린 발이지만, 강수진은 오늘도 발에 토슈즈의 끈을 묶습니다.

 

어쩌면 토슈즈 안에 감춰진 강수진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발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 아닐까요?

 

발이 견뎌낸 아픔과 고통으로 강수진은 지금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에 오르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아라비안 나이트' 읽어본 적이 있나요?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세헤라자데'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한답니다. 

 

하지만 세헤라자데는 매일 밤마다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면 죽게  운명에 처해있지요. 

 

세헤라자데는 죽지 않기 위해서 매일매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서 왕에게 들려줍니다.

 

 발레작품 <세헤라자데>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졌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세헤라자데가 첫날밤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발레 <세헤라자데> 줄거리가 되지요.

 

 죽지 않기 위해 천일동안 매일매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던 세헤라자데-  세헤라자데가 왕에게 처음으로 들려준 이야기를 발레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세헤라자데> 줄거리-황금노예와 소베이다의 

 

 발레 <세헤라자데> 아라비아의  왕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왕궁에는 술탄 샤리알(Shariar) 샤리알이 사랑하는 애첩 소베이다(Zobeide)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샤리알이 잠시 왕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이에 소베이다는 왕궁에는 신하와  말고  다른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소베이다는  신하에게 부탁해서 흑인 노예들이 갇혀 있는 방을 보여달라고 하지요.

 

 그곳에서 소베이다는  아름다운 흑인 노예를 보게 됩니다. 

 

 노예는 금으로 만든 옷을 입은 황금노예였지요. 

 

소베이다는  황금노예에게 반해서, 그만 노예들과 함께 춤을 추며 즐기게 됩니다. 

 

노예들과 소베이다는 정신없이 춤을 춥니다. 

 

여자노예, 남자노예, 황금노예 그리고 소베이다는 모든 것을 잊고, 서로의 신분조차 잊고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립니다. 

 

샤리알이 돌아온 것입니다.

 

 샤리알은 소베이다를   시험해보기 위해 잠시 왕궁을 떠나는 시늉을  것이었습니다. 

 

샤리알은 황금노예에게 반해 정신없이 춤을 추는 소베이다에게 크게 화를 냅니다. 

 

그리고 부하들을 시켜서  자리에 있던 모든 노예들을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버립니다. 

 

물론   황금노예도 죽게 되지요.

 

 소베이다는 자신 때문에 황금노예와 다른 흑인 노예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기 가슴을 단검으로 찌르고, 샤리알의  밑에서 숨집니다.

 

 

 

 

*노예들와 소베이다의 화려한 군무

 

<세헤라자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황금노예와 소베이다, 그리고 다른 노예들이   어울려서 추는 군무 장면입니다.

 

<세헤라자데> 안무한 미하일 포킨은  오랜 시간동안 이어지는  군무에서 다양하고 화려한 춤을 선보입니다. 

 

  군무 사이에 황금노예와 소베이다가 추는 솔로 춤도 다른 발레 작품들에서 흔히   없는 최고의 화려함을 드러내지요.

 

 <세헤라자데> 러시아 발레의 인기 제작자였던 디아길레프가 거느리고 있던 러시아 발레단의  창작 발레였습니다. 

 

그때까지 고전 발레작품들만 공연했던 러시아 발레단이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독특한  이야기를 발레로 만들자, 관객들은 열광했습니다.

 

 발레 작품들 중에서는 소설이나 전설, 옛날 이야기 등을 원작으로 하는 것이 많은데요.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일지라도, 발레가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볼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헤라자데> 펜이 아닌 발레로 다시 쓰여진 새로운 아라비안 나이트였습니다. 

 

 

 

 


 

1913 5 29,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날 극장에서는 러시아 발레단의 발레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극장은 발레 공연장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관객들은 발레 공연을 보고는 소란을 피우고 중간에 극장에서 나가버리기까지 했으니까요.

 

관객들은 당장 공연을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용수들은 그런 관객들을 보고는 두려워서 물을 흘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추던 발레리나들 중에는 기절하기까지 사람도 있었지요.

 

그날 샹젤리제 극장 안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1913 5 29,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어떤 작품을 공연했기에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일까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명작-<봄의 제전>

 

그날 , 샹젤리제 극장 무대에서는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이 스트라빈스키 작곡, 니진스키 안무의 <봄의 제전> 처음으로 공연하고 있었습니다.

 

<봄의 제전> 관객과 평론가 들은 이건 발레도 아니라며 소동을 벌였지요.

 

하지만 안무를 니진스키는 <봄의 제전> 새롭고 훌륭한 발레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니진스키는 소란한 가운데서도 <봄의 제전> 공연을 끝까지 마무리 지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니진스키와 스트라빈스키가 살아있을 , <봄의 제전> 언제나 나쁜 평가를 받았습니다.

 

누구도 <봄의 제전>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했지요.

 

하지만 몇 십 년이 흐른 사람들은 <봄의 제전> 새로운 발레의 문을 다시 열어젖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뒤늦게야 인정받은 작품 <봄의 제전> 그럼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봄의 제전> 줄거리

 

-1-봄의 찬가

 

여기저기 꽃이 활짝 피어있고, 풀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아름다운 .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봄을 맞아 축제를 벌입니다.

 

사람들은 어우러져 춤을 추고 미래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2-희생

 

2막은 한밤중의 어느 성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성전 안에서 무리의 처녀들이 신비로운 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던 처녀가 신의 선택을 받습니다. 다른 처녀들은 선택을 받은 처녀를 축하해줍니다.

 

선택을 받은 처녀는 신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고, 다른 처녀들은 제의를 지켜봅니다.

 

 

 

 

*모더니즘 발레의 시작을 알린 <봄의 제전>

 

<봄의 제전> 처녀를 제물로 바친다는 충격적인 줄거리와 발레 같지 않은 딱딱한 움직임 때문에 당시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봄의 제전> 뛰어난 까닭은 바로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와 춤을 발레로 표현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900년대는 시대에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춤으로 그림으로 글로 표현해내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독특한 것을 창조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을 사람들은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불렀습니다.

 

<봄의 제전>은 모더니즘 발레의 시작을 알린 첫 작품이었습니다.

 

비록 그 당시 관객들은 새로운 발레를 이해하지 못하고 너도나도 극장을 뛰쳐나갔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봄의 제전>의 새로움을 천천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의 야유 속에 공연되던 <봄의 제전>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계속 공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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