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동화책에서 한번쯤 <잠자는  속의 미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나쁜 마녀의 마술에 걸려   동안 기나긴 잠을 자게 되는 어여쁜 공주의 이야기이지요.  유명한 동화를 발레로 만든 것은 세볼로즈스키와 마리우스 프티파라는 러시아 발레의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잠자는  속의 미녀> 음악을 담당한 것은 차이코프스키입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백조의 호수> 초연에 실패하고 13년간이나 발레음악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잠자는  속의 미녀>에서 우아하면서도 웅장한 발레음악을 완성시켜 발레음악의 아버지로 당당히 서게 되지요.

 

 <잠자는  속의 미녀>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된  시간짜리  발레입니다. 이토록 공연시간이  작품인데도, 관객들이 <잠자는  속의 미녀>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프롤로그

 

 막이 열리면 호화스런 왕궁이 보입니다.  왕궁은 지금 커다란 경사를 맞았습니다. 왕과 왕비에게서 어여쁜 오로라(Aurora)공주가 태어난 것이지요. '새벽'이라는 뜻의 이름대로  아기는 왕국에 커다란 희망이 되고 빛이 되는 아기입니다.

 

 왕과 왕비가 옥좌에 앉으면 아기의 세례식이 시작됩니다. 세례식에는 요정들이 나타나 오로라 공주에게 선물을 나누어 줍니다. 선물은 '온화함, 건강, 의젓함, 용기, 평온' 같은 삶에  필요한 것들이지요. 요정들은 오로라 공주에게 선물을  줄거움을   시스(여섯 명이 함께 추는 ) 나타냅니다.

 

그런데  행복한 결혼식에 갑자기 악의 요정 카라보스가 나타납니다. 카라보스는 자기 혼자  세례식에 축하 받지 못한 것이 분해서 오로라 공주에게 무서운 저주를 합니다. 오로라 공주는  여섯  생일에 물레 바늘에 찔려서 죽게  것이라는 저주였지요. 

 

사람들이 모두 카라보스의 저주를 듣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착한 요정 라일락은 카라보스의 저주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지만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공주는 바늘에 찔린다고 해도 죽는  아니고 100 동안  잠을 자게  것이라는 거였어요. 

 

왕과 왕비는 일단 안심하고 백성들에게 왕국에 있는 물레는 모두 없애버리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1: 마법

 

어느덧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오늘은 오로라 공주는  여섯  생일 입니다. 시골처녀들은 오로라 공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꽃의 왈츠를 춥니다. 그리고 왕궁에서는  명의 귀공자들이 공주에게 청혼하기 위해 로즈 아다지오(Rose Adagio) 춥니다. 로즈 아다지오는 귀공자들이 오로라 공주에게 장미꽃을 바치는 것을 그린 아름다운 춤으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로즈 아다지오 만큼이나 이때의 오로라 공주의 춤이 유명하답니다. 오로라 공주는  명의 귀공자가 차례차례 로즈 아다지오를 추는 동안 계속 발끝으로 서서 애티튜드(한쪽 다리로 서고 다른 한쪽 다리는 90도로 꺾어서 들어올리는 자세)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잠깐 하기도 힘든 애티튜드를 오랜 시간동안 유지해야 하니, 아무리 훈련을 많이  프리마 발레리나라도 실수하기가 쉬운 부분이지요.

 

이어서 오로라 공주는 바리에이션(혼자 추는 솔로 ) 보여줍니다. 오로라 공주의  바리에이션은 모든 클래식 발레  가장 사랑스러운 솔로 춤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  노파가 등장해서 공주에게 장미꽃을 내밉니다. 하지만 꽃다발을 받고 춤을 추는 오로라 공주는 장미 가시에 찔려 그만 쓰러지고 맙니다. 사실  노파는 바로 악의 요정 카라보스였던 것입니다

 

 

 

 

 

 

*2: 환상

 

 다시  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어느  사냥을 나온 데지레(Desire) 왕자는 사냥을 나와 홀로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때 착한 요정 라일락이 나타나 왕자에게 오로라 공주의 환상을 보여줍니다. 환상 속의 오로라 공주는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스럽습니다. 왕자는 오로라 공주가 어디 있든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제 무대 안쪽으로 라일락 요정과 왕자가  배가 천천히 움직입니다.  부분은 '파노라마'라고 불리는데요. 수풀과 호수가 천천히 지나가는 아스라한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오로라 공주가 잠든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성에 도착한  라일락 요정은 악의 요정 카라보스를 물리칩니다. 그리고 왕자는 오로라 공주에게 키스를 하고 오로라 공주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오로라 공주와 함께 잠들어있던 모든 사람들도 모두 눈을 뜨고 성은   전처럼 활기에 가득  평화로운 곳으로 돌아갑니다.

 

 

 

 

 

 

*3: 결혼식

 

 3막은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결혼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막이 열리면, 장화신은 고양이, 파랑새 같은 동화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독특한 춤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다이아몬드 요정, 사파이어 요정, 금의 요정, 은의 요정 등이 무대에 올라와서 짧지만 재미있는 춤을 보여주지요.

  

하지만 3막에서 가장 아름답고, <잠자는  속의 미녀> 전체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부분은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그랑 파드되입니다. 모든 클래식 발레의 파드되 중에서도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가 추는  파드되는 가장 화려하고 가장 인상적인 그랑 파드되로 손꼽힙니다.  아름다운 파드되 뒤에는 선함을 상징하는 요정 라일락이 나타나면서 천천히 막을 내리게 되지요.

 

 <잠자는  속의 미녀> 3막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래서 3막만 따로 떼내어 <오로라의 결혼>이라는 작품으로 따로 공연하기도 했지요.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가 악을 이겨내고 사랑을 이룬  추는 그랑 파드되- 한번쯤 실제로 발레 공연장을 찾아가 감동을 느낄 만한 부분입니다.

 

 

 

 

 

 

*클래식 발레의 모든 -<잠자는  속의 미녀>

 

<잠자는  속의 미녀> 기교와 무대 구성 , 모든 면에서 클래식 발레의 모든 것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공연이 까다롭고 발레리나들은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라야만 오로라 공주 역을 완벽하게 해낼 수가 있게 되지요. 

 

하지만 그만큼 <잠자는  속의 미녀> 오늘날까지도 발레의 전설로 남아있는 작품입니다.

 

 선과 악이 함께 싸우는 가운데 이뤄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잠자는  속의 미녀>. 사람들은 발레리나들의 몸짓이 만드는  사랑이야기에 감탄하며 오늘도 <잠자는  속의 미녀> 공연장을 찾고 있습니다.

 

 

 

 

 

 

 

 

 

 

 

 

 


 

 

 

● 발레는 여성의 예술이라는 편견을 깬 천재 발레리노

 

여러분은 ‘발레리노’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발레리노’란 발레의 남성 무용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발레는 여성들 위주의 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현대 발레에서 발레리노들의 중요성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남성 무용수들이 프리마 발레리나를 보조해주는 역할만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요즈음의 발레에서는 남성 무용수도 자신의 재능을 맘껏 드러낼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고전 발레에서 남성 무용수들이 당당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심지어 발레의 주역까지도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니진스키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니진스키는 남성의 몸짓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최고의 발레리노였지요.

 

특히나 마치 하늘 위로 날아오르듯 자유자재로 펼치던 니진스키의 엘레바시옹(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기술)은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니진스키의 어린시절

 

니진스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접해왔습니다.

 

니진스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무용수였기 때문에 니진스키는 태어나자마자 무용이 곧 일상이었지요.

 

춤을 사랑했던 니진스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니진스키에게도 아름다운 발레를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자라면서 말과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니진스키가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지요.

 

이러한 부모님의 열정과 더불어 니진스키 자신도 춤추는 일은 곧 즐거움이었습니다.

 

아홉 살이 되던 해 니진스키는 황실 발레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니진스키의 작은 몸에서 나오는 춤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니진스키는 고작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러시아의 넓은 땅에 자신의 이름을 떨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니진스키의 춤을 보고 싶어 했고 니진스키는 마린스키 극장에 입단한 지 일 년 만에 바로 주역으로서 마린스키 극장의 최고 발레리노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세계로 뻗어나간 ‘무용의 신’

 

꼬마신동 니진스키가 러시아가 아닌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천재적인 공연기획가 디아길레프를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니진스키는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단 ‘발레 뤼스’에 합류해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등 전 세계 각지에서 무대에 섰습니다.

 

전 세계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서 있는 니진스키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니진스키는 마치 천의 얼굴을 가진 무용의 신과도 같았습니다.

 

<세헤라자데>에서의 노예, <지젤>에서의 알 브레히트 공작, <페트루슈카>의 슬픈 꼭두각시 인형 등 니진스키는 어느 역할을 맡든 완벽한 무대를 펼쳐 관객들을 무대에 온전히 빠져들게 했습니다.

 

특히나 니진스키가 <페트루슈카>에서 인형 복장을 하고서 분칠을 한 얼굴로 펼친 무용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발레리나를 사랑한 죄로 죽임을 당하는 인형 페트루슈카의 허무하면서도 슬픈 표정을 니진스키는 완벽하게 재연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통을 견뎌내고 하늘로 날아오르다

 

이렇듯 천재 발레리노로서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니진스키에게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맏형이 어렸을 때 추락 사고를 당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이후로 니진스키의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뤼스에 입단하면서도 니진스키는 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습니다.

 

사랑하던 형의 사고, 무책임한 아버지, 가난한 가족들 이 속에서 천재 니진스키는 삶의 슬픔을 알아갔습니다.

 

이러한 슬픔들이 그가 연기하는 배역마다 하나하나 배어들어 관객들은 니진스키의 연기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던 것입니다.

 

니진스키의 무용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니진스키는 마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니진스키의 엘레바시옹과 발롱(공중에 머물러 있는 듯이 보이는 기술)은 몹시 뛰어나서 관객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마치 무대 위에는 어느 젊은 발레리노가 아닌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한 마리 새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니진스키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앞선 발레리노이자 발레 안무가-니진스키

 

니진스키는 뛰어난 발레리노이면서 또한 천재적인 안무가였습니다.

 

그가 안무한 <목신의 오후>, <봄의 제전>은 당시에는 시대를 앞선 충격적인 안무로 관객들의 항의를 받기까지 했지만 오늘날 니진스키의 작품들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답니다.

 

이렇듯 뛰어난 발레리노이자 안무가인 니진스키. 하지만 니진스키는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무대를 떠나고 맙니다.

 

니진스키는 정신병을 일으킨 후에도 무려 30여 년 동안을 더 살고서야 숨을 거두었다고 하는데요.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니진스키의 삶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에 니진스키가 정신병을 앓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적어도 10여 년은 더 그의 환상적인 발레 연기를 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니진스키- 그는 발레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설과 또 아쉬움을 남긴 무대 위의 슬픈 새였습니다.

  

 

 

  


 

 

 

전세계에는 수많은 천재 발레리나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발레리나들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주신 발레리나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하늘이 내린 발레리나가 있는가 하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발레의 길을 찾아간 발레리나도 있습니다. 

 

끝없이 노력하고  노력해서 스스로 천재 발레리나의 길은  사람- 지금부터 엿볼 마곳 폰테인도 바로 그런 발레리나입니다.

 

 

 

* 살에 데뷔한 발레리나

 

"나는    이미 무대에 데뷔했다."

 

여러분은  말이 믿겨지나요? 

 

이것은 마곳 폰테인이 스스로  말이랍니다. 

 

어려서부터 무용학원에 다니면서 일찌기 발레를 시작한 폰테인이지만, 그래도    발레 무대에 데뷔했다니 정말 마곳 폰테인은 하늘이 내린 천재 발레리나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말은 정말로 폰테인이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는 말이 아니랍니다. 

 

폰테인은 걸음마를 종종 거릴 때부터 발레에 관심을 가졌다는 . 그리고  무용학원에 다니면서 발레를 배우던 때에도 이미 무대에 데뷔한 것처럼 긴장하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의미하는 것이지요.

 

 영국 발레계의 높은 선생님이었던  발루아 여사는 어린 시절의 마곳 폰테인을 보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성을 타고나지만, 어떤 사람들은 위대성을 획득한다."

 

  말은 우리는 흔히 천재들은 태어날 때부터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마곳 폰테인과 같이 어떤 사람들은 천재성을 스스로 노력하면서 만들어나간다는 말일 것입니다. 

 

 발루아 여사는 마곳 폰테인이 피나는 연습으로 스스로 천재 발레리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본 것이지요. 

 

마곳 폰테인은 이처럼 언제나 발레슈즈의 끈을 동여매며 노력하고  노력하는 연습 벌레였답니다.

 

 

 

 

*우리 시대의  안나 파블로바

 

 마곳 폰테인은 우리 시대의 안나 파블로바로 불리곤 합니다. 

 

그만큼 마곳 폰테인은 발레리나의 전설인 안나 파블로바에 못지 않은 힘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마곳 폰테인은 여섯   벌써 자신이 2 안나 파블로바가 되겠다는 당찬 결심을 하였답니다.

 

어린  폰테인이 무용학원에 다니고 있던 여섯  때의 일입니다. 

 

마곳 폰테인은 어느  어머니와 같이 길을 가다가 벽에서 벽보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런던에서 있을 발레공연을 광고하는 벽보였지요.  벽보 속에는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있었습니다.

 

폰테인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 발레리나는 누구예요?"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해주었습니다.

 

 " 발레리나는 안나 파블로바란다. 안나 파블로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리나지. 많은 사람들이 안나 파블로바의 춤을 사랑하고 있단다."

 

그러자 여섯  꼬마 폰테인은 길가에서 크게 외쳤습니다.

 

 "그러면 나는 안나 파블로바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가  테야!"

 

 어머니는 그런 폰테인이 귀엽고도 대견스러워 안나 파블로바의 발레 공연에 폰테인을 데려갔습니다. 

 

어머니와 폰테인이 함께  안나 파블로바의 공연은 멋졌습니다. 

 

 공연은 안나 파블로바의 마지막 발레 공연이었지요.

 

 어린 폰테인은 진지하게 안나 파블로바의 춤을 바라보았습니다. 

 

여섯  꼬마는 안나 파블로바의 공연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건 아무도   없는 일이지만,  십년   꼬마가 정말로  시대의 안나 파블로바가 되어 전세계 발레 팬들을 감동시키게 되었다니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다.

 

 

 

 

*눈송이 역을 피나게 연습하는 발레리나

 

 어떤 발레리나든지 처음부터 발레의 주인공을 맡는 일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작은 배역에서부터 시작하여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마곳 폰테인의  무대였던 <호두까기 인형>에서 폰테인은 단역이라고  수도 없는 역을 맡았습니다. 

 

바로 눈송이 역이었지요. 

 

사실 눈송이 역은 다른 사람들에게 발레 무대에 선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아주 작은 역할이었습니다. 

 

무대 한구석을 장식하는 정도의 하찮은 배역이었지요.

 

 그렇지만 폰테인은 매일  눈송이 역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곳 폰테인은 휴식 시간에도 쉬지 않았습니다. 

 

 무대  구석에서 눈송이 역을 피나게 연습하는 폰테인의 모습에는 주인공들조차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폰테인은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무대에 오를 때는  역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연습벌레 마곳 폰테인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폰테인이 있던 발레단의 단장 선생님인  발루아 여사였습니다.

 

 

 

 

*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지젤'-마곳 폰테인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끝난   발루아 여사가 어린 폰테인을 불렀습니다. 

 

폰테인은 고개를 숙인  부끄러운 얼굴로  발루아 여사를 찾아갔습니다. 

 

 발루아 여사가 말했습니다.

 

 "폰테인, 다음 작품에서  역할을 결정했다."

 

  폰테인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폰테인은 다음 작품에서는 단역을 맡을  있게 된다면 몹시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폰테인, 다음 작품에서 너는 지젤 역을 맡도록 한다."

 

  마곳 폰테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 선생님, 저는 지젤을 춤추기엔 너무 어려요. 그리고 저는 발가락도  생기고...얼굴과 목도 길지 못하고...."

 

 하지만  발루아 여사는 무조건 폰테인이 지젤 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폰테인은 혹독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눈송이 역을 하던 때보다  곱절은 더한 피나는 노력이었습니다. 

 

순간순간 폰테인은 자신은 지젤을 제대로 춤출  없다고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폰테인은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춤을 추었습니다.

 

  드디어 공연 당일, 폰테인은 많은 걱정을 했지만, 폰테인의 <지젤>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젤> 마곳 폰테인을 단숨에 발레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일곱  어린 나이에 <지젤> 어느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폰테인의 춤을 사랑했습니다.

 

 

 

 

*60세의 발레리나

 

<지젤> 이후 폰테인은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여러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그때마다 폰테인의 오데트 공주와 오로라 공주는 저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폰테인의 춤을 칭찬했지만 폰테인은  한번도 발레 연습을 그친 적이 없었습니다.

 

 폰테인은 60세가 넘어서도 계속해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세상에, 할머니가 발레 무대에 오르다니, 그런 이상한 일이  있다고 느껴지나요? 

 

하지만 놀랍게도 60세의 발레리나는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완벽했습니다. 

 

영원한 지젤이자 오데트 공주, 오로라 공주였던 마곳 폰테인. 혹시 60세의 늙음도 폰테인의 아름다움에 놀라 폰테인을 비켜갔던 것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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