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양 사교춤의 도입

 

우리나라에서 발레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아마도 '우리의 전통무용이 아닌 서양무용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하는 점을 살펴봐야 것입니다.

 

서양무용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05년의 일이랍니다. 이때 우리나라에 있는 청나라(중국) 대사관에서 화려한 무도회가 열렸는데요. 무도회에서 서양의 사교춤이 처음으로 선보이게 것입니다.

 

그 후 1920년에서 1925년까지는 러시아에서 살다온 사람들이 만든 '해삼위' 단체가 활동을 하였습니다. '해삼위' 사교무용을 위해 모인 단체였지요. '해삼위'에서는 박세민, 김동환, 현철 등이 민락무(Hopak Dance)라는 사교춤을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교춤들은 예술이라기보다는 그저 즐기기 위한 춤이었습니다. 아직 서양무용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지요. 그러면 무대예술로서의 서양무용은 언제쯤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2. 신무용-예술 무용의 시작

 

1926, 우리나라에서 일본인의 무용 공연이 열립니다. 일본인은 '이시이바쿠(石井漠, 석정막)'라는 유명한 무용가였습니다.

 

이시이바쿠는 우리나라에 '신무용'이라는 것을 소개하였습니다. '신무용' 그대로 새로운 무용, 이전에 우리가 보았던 전통춤과는 다른, 새로운 서양무용을 말하는 것이었지요. 이시이바쿠가 무대에서 보여준 신무용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무용에 관심이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지요.

 

특히 시기에 최승희와 조택원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이시이바쿠의 제자였던 최승희와 조택원은 신무용을 완벽히 익혀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서양무용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때 최승희는 3년간 미국, 독일,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150 이상의 공연을 열었다고 하지요.

 

바로 시기부터 세계인들은 우리나라의 무용가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 최초의 발레 공연-외국인 슈하로프의 내한 공연

 

이렇게 서양 무용이 우리나라에 서서히 알려지고 있을 ,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열립니다. 1932 3, 서울 YMCA 강당에서 열린 무용가 슈하로프(A. Sukharov) 공연이었지요. 공연은 서양무용으로 뭉뚱그려진 형태가 아니라 '발레'라는 또렷한 형식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공연이었답니다.

 

공연 이후로 서양 무용 중에서도 '발레'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을 받게 되지요. 발레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바로 이때인 것입니다.

 

 

 

4. 조선무용예술협회의 창단

 

슈하로프의 공연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는 번의 발레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에는 무용과 발레의 발전을 위한 모임이 만들어집니다. 모임이 바로 1946년에 창단된 <조선무용예술협회>입니다.

 

<조선무용예술협회> 맡은 일에 따라 다섯 개의 부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현대무용부, 발레부, 교육무용부, 이론부, 미술부가 그것이지요. 여기서 발레를 그냥 현대무용부에 넣지 않고, 따로 발레부로 만든 점이 특이하지요?

 

이것은 당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레를 아주 중요하고 흥미롭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랍니다.

 

 

 

5. 한동인의 '서울발레단'

<조선무용예술협회> 회원 중에서도 발레에 가장 관심을 보인 사람은 한동인이었습니다.

 

한동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발레단인 '서울발레단' 1949년에 창단하였습니다.

 

그리고 1949 10 7일에는 명동의 시공관에서 유명한 발레작품 < 실피드( Les Sylphides)> 공연하였습니다.

 

서울발레단이 공연한 < 실피드> 우리나라의 발레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공연으로 남아 있는데요.

 

왜냐하면 공연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직접 출연하여 공연한 최초의 발레 공연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동인의 '서울발레단' 그리고 <조선무용예술협회>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서 이모저모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광복 이후 어지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조선무용예술협회> 해체되고 1950년에는 한국 전쟁이 터지고 맙니다. 1950 6 24일부터 <인어공주> 공연하기로 했던 서울발레단도, 6 25일에 갑작스럽게 터진 한국전쟁으로 모두 뿔뿔히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에게도 커다란 아픔을 남겼지만 한국 발레의 발전에도 상처를 남겼습니다.

 

 

 

6. 임성남과 국립발레단

 

한국전쟁이 끝난 우리나라의 발레는 한동안 별다른 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서울발레단을 이끌던 한동인이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나라의 발레는 위기를 맞게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한동인의 뒤를 잇는 무용수가 우리나라에 귀국합니다. 사람은 일본에서 발레를 배워온 임성남이었습니다. 임성남은 1956년에 귀국공연에서 멋진 고전발레를 선보였습니다. 이후에도 임성남은 번의 공연을 통해 우리나라에 발레를 알리는 노력했지요.

 

또한 임성남은 1973년부터 1992년까지 국립발레단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국립발레단은 창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발레의 역사라고 있는 발레단이지요. 원래 국립무용단 안에 속해있었던 발레단이 따로 독립한 것은 1973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임성남은 국립발레단의 창단과 발전을 모두 지켜본 장본인이었던 것입니다.

 

임성남은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 여러모로 연구한 리더이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뛰어난 발레리노이기도 했습니다. 1976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 전막이 공연되었는데요. 공연에서 임성남은 지그프리트 왕자 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이렇게 임성남과 국립발레단을 중심으로 한국의 발레는 점점 발전해나가고 있었습니다.

 

 

 

7. 유니버설 발레단

 

70년대는 발레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대학에는 무용학과가 생겨나 학생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국립발레단 이어 몇몇 발레단이 창단되었습니다. 1976년에는 광주시립무용단이 만들어졌고, 1984년에는 최초의 민간 발레단인 유니버설 발레단이 만들어졌지요.

 

유니버설 발레단은 우리나라의 발레가 한결 발전하는 기여하였습니다. 유명한 외국의 예술 감독을 초청하고, 멋진 발레리나들을 길러내기 위해 노력하였지요. 그래서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단 이후 우리나라 발레는 더욱 화려해지고 더욱 발전해나갈 있었습니다.

 

시기에 유니버설 발레단의 유명한 발레리나로는 문훈숙이 있습니다. 문훈숙은 국립발레단의 최태지와 아름다운 경쟁을 하면서 우리나라 발레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8. 우리나라 발레의 현재 모습

 

이제 우리나라의 발레리나들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있는 강수진이 대표적인 경우이지요.

 

또한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다가 2002년에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김지영, 볼쇼이 발레학교를 나와 국립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주원도 한국 발레를 세계에 알리고 있는 발레리나 명입니다.

 

발레리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레리노들도 세계 속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유명한 발레 콩쿠르에서 이원국, 김용걸과 같은 발레리노가 잇따라 수상을 하면서 한국의 발레는 점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개의 직업발레단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가 우리나라의 직업발레단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실력 있는 발레단이 많이 있습니다.

 

1995 광주 국제 발레 콩쿠르를 열었던 박금자 발레단, 이화여자 대학교 무용과 출신의 발레리나들이 만든 발레 블랑을 비롯해서리안 발레 시어터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양대학교 교수였던 조승미 씨가 만든 조승미 선교 발레단, 국립발레단원인 강숙현, 김명순, 한제선 씨가 활동하고 있는 호산나 선교 발레단 발레를 통해 선교 활동을 벌이는 발레단도 있답니다.

 

 

 

9. 우리나라 발레의 미래

 

우리나라 발레는 우수한 발레단과 발레리나들의 노력으로 점차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러시아나 유럽의 발레에 비하면 모자란 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학교처럼 어릴 때부터 발레리나들을 가르치는 발레학교가 아직 없답니다.

 

세계적인 발레 콩쿠르가 없다는 것도 우리나라 발레의 약점 하나이지요. 1995년에 광주 국제 발레 콩쿠르가 열리긴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지 못했으니까요.

 

우리나라 발레인들은 한국 전쟁과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발레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세계 속에 진출해 있는 우리나라의 발레리나들은 노력의 결실이라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발레의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풀어야만 문제점이 있답니다.

 

바로 발레 학교와 국제 발레 콩쿠르가 우리나라에도 어서 만들어지는 것이랍니다.

 

발레학교와 국제 발레 콩쿠르가 있는 우리나라-생각만 해도 무척 자랑스럽지요?

 

이제 우리나라도 그런 발레강국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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