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의 역사-

*이탈리아에서 처음 공연된 발레

 

이렇게 시작된 발레는 1400년대를 넘어서면서 단순히 취미로 추는 춤이 아니라 관객들을 위해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합니다.

 

극장에서 공연된 당시의 발레 중에서 유명한 것이  작품이 있었는데요. 1489년에 '베르곤치오  보타'라는 사람이  귀족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공연한 <이아론과 금의양모>라는 작품입니다.

 

이때도 아직 발레가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공연되는 극장예술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무대에서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레가 행해졌다는 -이것이 주목할 만한 사실이겠지요?

 

 <이아론과 금의 양모>라는 작품을 잠깐 살펴보면 독특한 점이 발견되는데요.

 

그것은 단순히 사교춤이었던 발레에 여러 무용의 형식들이 합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지요.

 

이때 이탈리아에서 행해진 발레에는  가지의 무용이 섞여 있었습니다.

 

  가지무용을 살짝 엿보면 발레의 기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할  있을 것입니다.

 

먼저 발레에 혼합된  가지 무용  첫번 째를 살펴볼까요.

 

 첫번 째는 '당스 피귀레'라고 하는 집단 무용입니다.

 

'당스 피귀레'는 대사나 노래를 하지 않는 무언극과 독특한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가면극이 합쳐진 형태였는데요.

 

특징은  '당스 피귀레'는 많은 무용수들이 나와 함께 신기하고 묘한 무늬를 만들면서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요즈음의 발레에서도 발레리나들이 무대에서 모였다가 흩어지며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을  적이 있죠? 바로 이러한 것이 옛날 이탈리아의 '당스 피귀레'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일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발레에 혼합된 무용  번째는 '발리' '발레티'라고 불려지던 귀족들의 춤이었습니다.

 

이것은 발레가 극장에서 공연되기 전에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사교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발레에 혼합된  번째 무용은 바로 '브란디'라는 무대 무용입니다.

 

'브란디'가 발레에 영향을 주었다는   여겨 볼만한 사실입니다. 귀족들이 살롱에서 취미로 추던 춤이 드디어 예술이 되어 무대 위로 올라가게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발레에 혼합된 무용  번째는 '모리스카'라는 무용이었습니다. 모리스카는 무용수가 즉흥적으로 자신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추어 아름다운 몸짓을 만들어내는 춤이었는데요.

 

지금의 발레에서도 주인공을 맡은 발레리나가 자신의 개인기를 마음껏 뽐내는 장면이 들어있기에 마련이지요. 모리스카는 이렇게 발레에서 주인공의 기교를 자랑할  있는 기반이  무용이었습니다.

 

 

 

 

 

-발레, 프랑스로 전해지다 - 극장예술의 꽃을 피운 발레

 

이탈리아에서 발레는 이렇게 처음 시작이 되고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발레가 지금과 같이종합 예술로 발전할  있었던 것은 발레가 프랑스로 전해진 후부터였습니다.

 

발레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전해진 계기도 흥미로운데요. 당시 이탈리아의 귀족이었던 카트린이 프랑스의 왕실로 시집을 갔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카트린은 열네 살의어린 나이에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처음부터 카트린 왕비가 프랑스에 발레를 널리 전파하려고 했던 것은아닌  같습니다.

 

어린 왕비는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시집을 왔기 때문에 향수병과 외로움에 시달렸지요. 그래서 카트린 왕비는 고향에서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던 발레를 프랑스에서도 보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카트린 왕비는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신하 '발타다르  보주아외'를 시켜서 발레를 공연하게 하였습니다. '발타다르  보주아외'는 이탈리아에서 발레 선생님을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별로 어렵지 않게 카트린 왕비의 명령에 따라 발레를 만들  있었겠지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발레작품 <왕비의 발레 코미크(발레 코미크   )> 만들어집니다.

 

 <왕비의 발레 코미크>라는 작품은 아주 중요한 작품입니다.

 

발레 역사상 제대로  발레작품으로 처음 기록되는 것이 바로  <왕비의 발레코미크>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왕비의 발레 코미크> 1581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되었습니다.

 

   발레의 안무는 '베르조조소'라는 사람이 맡았는데요. 베르조조소는 이미<왕비의 발레 코미크> 공연할 , 무용, 음악, 무대 등을 꾸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애쓰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발레와 프랑스 발레가 갈리는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발레는 프랑스에서 현대와 같은 종합적인 예술로 꽃을피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1600년대에 이르면 프랑스 발레의 역사에서는 물론 세계 발레의 역사에서 빼놓을  없는 인물이  사람 등장합니다.

 

바로 '짐이  국가이니라'라는 말로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입니다. 루이 14세가  '짐이  국가이니라'라는 말은 의 절대 권력을 나타내는 말로 유명합니다. 나라가 있으려면 땅도 있어야 하고, 주권도 있어야 하고, 국민도 있어야  터인데, 왕이  나라가 된다니 참으로 거만한 말이 아닐  없지요.

 

이렇듯 왕권이 강했던 루이 14. 그가 발레에 깊이 빠져서 일주일 중에 3~4일은 발레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 그것도 발레를 관람한 것이 아니라 직접 출연하여 무대에 올랐다면 믿어지나요?

 

믿기지 않겠지만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루이 14세는 당시 최고의 발레리노였습니다.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나라의 왕이  루이 14세는 어렸을 때부터 마음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열세   발레를 처음 보고는 그만 발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왕이 신하들과 국민들 앞에서 발레 공연을 하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이 발레에 몰두하여 직접 발레공연에 출연까지 했다는 것-이것이 얼마나 프랑스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 루이 14세는 발레에 직접 출연하지 않게 된 후에도 발레학교를 세우는 등 프랑스에서 발레를 널리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이렇게 루이 14세는 발레리노로서, 또 발레의 교육자로서 발레의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공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루이 14세의 영향으로 이제 발레는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 분야가 되었습니다.

 

루이 14세 이후에는 장 조르주 노베르 라는 발레 이론가가 발레에서 공허한 기교 대신에 춤을 통해 진실한 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발레에 낭만주의의 바람이 불기도 하였지요. 낭만주의란 복잡하고 골치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예술계의 바람이었습니다.

 

이 낭만주의를 이어받아 프랑스의 발레 창작자들은 아름답고 새로운 이야기와 발레의 몸짓을 합치기 위한 시도들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발레역사

지금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발레가 발전해 온 과정을 주로 이야기했는데요.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발레하면 떠올리는 발레단이 있지요. 바로 화려한 연기와 눈부신 무대로 전 세계인을 감명시키는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단입니다.

 

러시아에서는 발레가 유럽에 전해지기 시작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발레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하여 러시아에는 일찍부터 발레공연을 할 수 있는 마린스키 극장과 같은 대규모 극장이 세워졌지요.

 

그래서인지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발레 역사에서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주옥같은 명작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백조의 호수><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지젤>과 같은 작품들이 모두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지요.

 

 

 

 

 

*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현대의 발레

지금까지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에서 발레가 어떻게 발전하고 꽃을 피웠는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발레는 더 이상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의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발레는 몸으로 부르는 노래로서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며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듯 아름다운 무대예술로서의 발레가 있기까지 결코 쉬운 과정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레에 관심을 쏟았고, 발레는 그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갔습니다.

 

여러분은 ‘드가’라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본 적이 있나요?

 

드가는 발레리나들이 연습하는 과정, 또 발레리나들이 발레슈즈의 끈을 조이는 장면 등을 그림으로 그려낸 유명한 화가인데요.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무대에서의 화려한 발레리나의 그림이 아니라, 그렇게 말없이 발레슈즈의 끈을 조이는 발레리나의 그림에서 더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사랑하는 지금도, 발레리나들은 무대 뒤에서 더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해 말없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발레가 아름다운 것은 단지 무대에서 화려하게 뱅뱅 도는 발레리나들의 몸짓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대 뒤에서도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발레리나와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성이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발레는 그렇게 오늘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더 아름다운 것을 향해 걸음을 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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